우리금융 지역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출범
우리금융그룹이 금융권 최초로 자체 ‘지역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최대 1조2000억원을 투입한다는 소식은, 지역 창업 생태계에 꽤 묵직한 파장을 예고한다. 이재명 정부가 생산금융·지방우대금융을 강하게 독려하는 기조 속에서, 우리금융의 이번 행보는 정책 방향과 정교하게 보폭을 맞춘 사례로 읽힌다. 단순한 지원 선언을 넘어 “금융이 지역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느냐”를 가늠할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금융권 최초, ‘지역’에 꽂힌 우리금융의 전략적 선택
우리금융이 내세운 가장 강한 키워드는 단연 “금융권 최초”라는 수식어다. 비슷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그동안 여러 금융사에서도 운영해 왔지만, 특정 산업이나 수도권 중심 스타트업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지역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못 박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지역(비수도권 또는 권역 단위)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성장 단계에 맞춰 금융과 비금융 지원을 함께 얹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여기서 기사 속 “육성”이라는 표현은 다소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데, 쉽게 풀면 ‘좋은 팀을 뽑아서 오래 달리게 도와준다’는 개념에 가깝다. 초기 기업은 제품을 만들고(개발), 시장을 확인하고(검증), 매출을 늘리고(확장) 인재를 채용하는(조직화) 과정에서 늘 자금과 네트워크가 막힌다. 우리금융은 이런 ‘성장 병목’을 지역에서 더 심각하게 겪는다는 문제의식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에 초점을 맞춘 점이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본다. 지역 스타트업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투자자·대기업 파트너·전문 인력 풀이 좁아 ‘연결의 밀도’가 낮은 탓에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금융사가 단순히 돈만 푸는 것이 아니라, 지역 거점 네트워크를 촘촘히 잇는다면 파급력은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 다만 그만큼 ‘보여주기식 지역 행보’로 끝나지 않게, 선발 기준과 성과 측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온다.
정리하면, 우리금융의 이번 프로그램은 지역을 ‘보조 무대’가 아니라 ‘주 무대’로 놓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말로는 자주 나오지만 실행에서는 희미해지기 쉬운 만큼, 금융권이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 강한 시그널을 준다.
최대 1조2000억원 투입, ‘생산금융’의 의미를 현장으로 가져오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대 1조2000억원이라는 투입 규모다. 숫자가 큰 만큼 “정말 스타트업에 저 정도가 직접 흘러가나?”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통상 이런 경우 지원금이 전부 현금 지원으로만 들어가기보다는, 대출·보증·투자·펀드 조성·프로젝트 금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스타트업 성장 단계에 맞춰 ‘돈의 형태’를 바꿔 공급하는 구조다.기사에 언급된 “생산금융”은 표현이 다소 어렵게 들리지만, 쉽게 설명하면 ‘부동산이나 단기 차익이 아니라, 실제 물건과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곳에 돈이 흐르게 하는 금융’이다. 즉 제조, AI·소프트웨어, 콘텐츠, 에너지, 바이오 등 실물·서비스 기반 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방향이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의 자금이 특정 자산시장으로만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도 깔려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금융의 선택은 정책 기조와 정확히 맞닿는다. 이재명 정부가 독려하는 생산금융·지방우대금융 흐름 속에서, 우리금융이 ‘지역 스타트업’이라는 구체적 대상으로 투입 계획을 내놓은 것은 실행력을 강조하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비평을 덧붙이고 싶다. 스타트업 지원에서 중요한 것은 “총액”보다 “설계”다. 1조2000억원이 정말 의미 있는 숫자가 되려면, 다음 요소들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 단계별 자금 설계: 초기엔 소액·고빈도, 성장기엔 대출·투자 혼합, 스케일업 단계엔 대형 자금과 글로벌 확장 옵션 제공
- 상환·담보 부담 완화: 스타트업 특성상 담보가 부족하므로 매출연동, 보증연계, IP(지식재산) 평가 등 대안이 필요
- 민간투자와의 연결: 금융사 자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VC, CVC, 지역 펀드와 공동투자 구조가 중요
- 실패 비용 최소화: ‘부실’ 프레임이 아니라 재도전 구조(리스크 분산, 세컨드찬스 프로그램)가 있어야 생태계가 건강해짐
지방우대금융과 스타트업 생태계…우리금융이 넘어야 할 과제
이번 행보는 분명 “지방우대금융” 흐름과도 깊게 연결된다. 지방우대금융을 쉽게 풀면,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고용을 만들며 세금을 내는 주체들에게 금융 접근성을 더 좋게 만들어 주자는 취지다. 수도권에 비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지역 기업에게 금리·한도·심사 측면에서 우호적 조건을 제공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를 스타트업에 적용하면, 단순한 우대금리를 넘어 ‘지역에서 창업해도 불리하지 않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내가 보기엔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 스타트업이 수도권으로 본사를 옮기는 이유는 단지 “멋져 보여서”가 아니라 투자 미팅, 인재 채용, 대기업 협업, 정부 과제, 언론 노출 등 성장에 필요한 접점이 그쪽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이 진짜로 지역 창업을 육성하려면, 자금과 더불어 성장의 접점을 지역에 남겨야 한다. 즉 ‘돈은 지역에 주고, 기회는 수도권에서 보자’가 되면 정책 목표와 어긋난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다음 같은 실행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 지역 거점 중심의 상시 선발·멘토링: 일회성 공모가 아니라 분기·반기 단위로 지속 선발해 파이프라인을 구축
- 산학연·지자체와의 묶음 협력: 지역 대학·연구소·테크노파크·지자체 사업과 연결해 실증(테스트베드) 제공
- 판로 개척과 B2B 연결: 금융사 계열 네트워크를 활용해 납품, PoC(개념검증) 기회를 만들어야 체감 성과가 남음
- 성과지표의 현실화: 단기 투자수익률만 강조하면 ‘안전한 기업만 선호’로 흐르기 쉬워 고용·매출·지역정착 등 복합지표가 필요
결국 우리금융이 하려는 일은 “지역 스타트업을 돕는다”는 따뜻한 구호를 넘어서, 지역경제의 구조적 약점인 연결망·자본·인재 문제를 금융의 방식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방향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실행 디테일에서 승부가 날 수밖에 없다.
결론: 1조2000억원의 무게, ‘지역에서 성장하는 공식’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금융그룹은 금융권 최초로 자체 지역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고 최대 1조2000억원을 투입하며, 이재명 정부의 생산금융·지방우대금융 독려 기조에 발맞춘 행보를 본격화했다. 핵심은 큰 규모의 자금이 단순한 대출 확대에 그치지 않고, 지역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투자·보증·네트워크를 함께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되느냐에 있다.다음 단계로는, 실제 모집 공고(대상 지역·업종·선발 기준), 지원 방식(투자/대출/보증 비중), 프로그램 운영 파트너(지자체·대학·VC 등), 그리고 성과지표가 어떻게 공개되는지까지 꼼꼼히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지역 창업팀이라면 참여 요건을 미리 점검해 사업계획서와 지표(매출, 사용자, 기술검증, 고용계획)를 정리해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준비가 될 것이다.